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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분쟁 사례 조사자료] 아프리카 분쟁의 창, 케냐와 차드

아프리카 분쟁의 창, 케냐와 차드

아프리카가 2008년 새해 벽두부터 정치적 불안 요소들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다. 동부아프리카의 케냐에서는 2006년 12월 27일에 치러진 대선의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서부아프리카 나이지리아는 반군들의 정부시설물들에 대한 공격으로 원유생산에 차질을 빚기도 하였다. 여기에 중부아프리카의 차드에서는 반군들이 한때 수도를 점령하고 대통령궁을 에워싸 공격하는 내전이 발생하는 등 아프리카 주요 지역에서 정치적 불안정이 점증하고 있어 21세기 이후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구가하던 아프리카가 다시 정치적 후진성으로 빠지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머리에 화살 맞은 청년

지난 1월 26일, 케냐 히프트 벨리 지역의 나쿠루 마을에서 머리에 화살을 맞은 한 청년이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5일 전, 이 마을에서는 칼과 화살, 창으로 무장한 부족간 전투가 벌어져 최소한 27 명이 사망했으며 그 전에도 키바키 대통령의 재선을 둘러썬 분쟁으로 일대 혼란이 발생했다.ⓒ 월간 말



케냐:아프리카 정치 모범국의 정국불안

아프리카 정치의 모범국이자 정치적 안정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케냐가 2007년 12월 27일 대통령 선거 실시 이후 그 결과를 놓고 또 다시 아프리카다운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어 아프리카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회의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케냐의 경우 5년 전 28년간 독재정권을 전형한 다니엘 아랍 모이(Moi) 정권에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으로 평가받은 상태에서 또다시 과거로의 회귀를 선택함에 따라 그 충격이 더 깊어지고 있다. 일부 정치 분석가들은 케냐의 현 대통령인 음와이 키바키(Mwai Kibaki)가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 클럽에 합류한 것 아니냐 하는 견해를 내 놓기도 하였다. ‘무가베 클럽’이란 약간 자조적인 평가로 이는 짐바브웨 대통령 무가베가 100살까지 대통령을 할 것이라는 독재권력 야욕에서 비롯된 것으로 아프리카에서는 무가베를 비롯하여, 우간다의 무세베니대통령, 가봉의 봉고대통령 그리고 최근 내전상태에 있는 차드의 이드리스 데비(Deby) 등 일부 지도자들이 현재 20년 가까운 장기집권을 구가하고 있다.

케냐는 동부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로 풍부한 천연자원은 없지만 관광자원을 중심으로 일부 차(tea), 커피 등 농산품이 주요 외화수입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그 동안 서방국가들과의 긴밀한 외교관계로 경제적 원조를 받아 국가의 재정을 채울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대테러전의 거점 국가로 케냐를 설정하고 정치, 경제적으로 많은 후원을 해주고 있다. 이런 케냐가 12월 27일 대선 이후 종족간의 갈등으로 인해 현재까지 1,000여명이 사망하고 3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하는 등 정치적 혼란에 빠져있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대선에서 보여준 집권당의 선거부정에서 기인한다. 이미 선거이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렌지 민주운동(ODM)의 라일라 오딩가(Raila Odinga) 후보가 키바키 현대통령에 근소하게 앞섰고 투표 날 출구조사에서도 오딩가의 승리가 점쳐졌기 때문에 야당의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생각했다.

선거가 종결된 후 대통령인 키바키와 야당 후보 라일라 오딩가의 개표가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개표가 70%를 넘을 때 이미 약 100만 표의 차이가 되었으며 막바지가 되자 라일라 오딩가 후보의 당선은 확실해 보였다. 정권교체가 확실해 보이던 순간, 갑자기 개표 방송이 중단되고 3일 후 정부는 키바키 대통령이 연임하게 됐다고 선포하였다. 이와 같은 발표는 순식간에 케냐 정국에 소용돌이를 몰고 왔다. 이미 법무부 장관도 개표과정에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 발표하고 다시 재검표를 실시한다는 등 부정요소를 인정하는 듯 했으나 키바키는 그대로 자신이 대통령이라고 인정하며 재검표를 일축하였다.

이로 인해 나이로비 인근에 있는 슬럼가에서부터 종족간의 갈등들이 표출되면서 종족간의 살육이 계속되었다. 초기에는 반(反)키쿠유족(族)의 키쿠유족들에 대한 살인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현대통령인 키바키가 키쿠유족이라는 이유에서다. 케냐는 키쿠유족이 사실상 정부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또한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지적이 있다. 사실 2002년 선거에서 키바키가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그 이전 다니엘 아랍 모이(Moi) 정권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정권을 교체하고자 했던 열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키바키 정부 역시 그 이전의 정부와 마찬가지로 많은 부정부패가 발생하였고 이 중심이 키쿠유족을 중심으로 한 권력의 핵심층이라는데 국민들의 실망이 컸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 중에서도 경제성장률 6%를 자랑하는 케냐지만, 대다수의 빈민층들은 여전히 높은 실업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빈민층들은 ‘가난을 구제하겠다’고 선포했던 키바키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하였지만 그들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어 더욱 실망스러워했으며 이들의 표심은 당연히 새로운 대안이었던 오딩가 야당후보를 선택했다. 그러나 납득할 수 없는 선거 실패에 이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며 돌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고 집과 가게를 불태우고, 증오를 푸는 한 방편으로 키쿠유족을 택하고 종족갈등으로 확산되었다.

케냐의 경우 초대 대통령이었던 케냐타가 독립운동을 주도하면서 케냐의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다. 케냐타는 영국 식민시절 마우마우단을 이끌던 독립투사였지만 그는 케냐의 가장 큰 종족인 키쿠유족출신이라 독립이후 대부분의 국가운영을 키쿠유족이 독점하여 타종족들의 정치 참여기회를 박탈함으로써 계속적으로 종족간의 불만을 키워왔다. 케냐의 주요 종족들을 살펴보면 키쿠유족(22%), 루히야족(14%), 루오족(13%), 칼렌진족(12%), 캄바족(11%), 키시족(6%), 메루족(6%), 기타 흑인(15%)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케냐의 종족분쟁은 최대부족인 키쿠유족과 세 번째 큰 종족이자 야당 오딩가의 종족인 루오족간의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키쿠유족은 반투족에 속한 종족으로 주로 도시 및 농경생활을 해왔다. 이들 반투계는 우리가 흔히 아는 튼튼한 몸과 적당한 키의 흑인으로, 약 1070만명정도가 있다.

반면 루오족은 마사이나 투치에 가까운 나일계 흑인들로 키가 큰 종족으로 인구가 320만명 정도이며 주로 유목생활이나 농경생활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가장 강력한 전투부족인 마사이나 삼부루족들이 모두 이 나일계 흑인이다.

이와 같은 상이한 종족들 간에 그 동안 억눌렸던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갈등들이 이번 부정선거를 계기로 폭발하여 종족간의 살육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 분쟁이 ‘인종청소’의 양상을 띠면서 그동안 사이좋게 이웃으로 지내오던 키쿠유족이나 루오족이 이제는 언제 자신들을 공격하여 죽일까 하는 걱정과 의심으로 집을 버려두고 난민생활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루오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키수무’(Kisumu)는 인구 50만 명이 넘는 케냐의 3번째 큰 도시로, 이곳에서 살고 있는 키쿠유족(族)은 보복살해 위협을 피해 도시를 떠나고 있으며 반대로 ‘나쿠루’(Nakuru)지역은 키쿠유족(族)이 다수 거주하는 도시로 이곳에서는 반대로 루오족이 살해위협 때문에 도시를 떠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케냐의 정치 분쟁으로 많은 사망자들이 발생하자 남아공의 데스몬드 투투주교를 비롯하여 가나의 전 유엔사무총장인 코피아난 그리고 반기문 현 유엔사무총장 등이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중재자로 나서고 있다. 또한 미국과 유럽연합도 연립정부 구성 등을 제시하며 케냐정부와 야당에 대화를 촉구하고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2월초까지만 해도 정부와 야당과의 대화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ODM은 전국적으로 15개 항의 시위 장소를 정하고 3일 동안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였다. 정부도 정치적 분위기가 안정될 때까지 공공장소에서의 집회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등 서구 국가들이 대통령 선거 투표 개표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고 야당과의 권력공유를 압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만약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대통령 선거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않는다면 케냐에 대한 원조를 감축할 것이라고 위협하며 케냐 정부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EU 선거 참가자들은 지난해 연말에 실시된 케냐의 대통령선거가 문제가 있었다고 비판하였다. 이와 같은 원조 삭감에 대한 EU의 위협은 지금까지 서방세계로부터는 가장 먼저 발표된 것으로 미국 그리고 캐나다도 EU와 마찬가지의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이러한 서방국가들의 압박과 코피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의 중개 노력으로 케냐정부와 야당과의 권력공유를 두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2월 10일 양측은 코피아난의 중재안을 두고 협상을 벌였다. 협상이 재개된 이유 중의 하나는 정부 측이 시위금지를 해제한 반면 ODM의 오딩가 측은 그동안 제기하였던 키바키 대통령의 사임과 재선거 요구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의 주요 안건은 권력공유로 수상직을 만들어 이 자리를 오딩가가 맡는 것이 가장 큰 쟁점이다. 이밖에 부수상직 2개를 신설하는 문제와 ODM 의원들의 내각 입각을 두고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양측이 전격적으로 회담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국제사회의 압박 때문에 가능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럽연합과 미국 등의 케냐에 대한 경제제재 위협과 유엔의 평화유지군 파견 시사, 그리고 유엔의 국제인권조사단의 파견 등이 케냐 정부를 압박하였다. 또한 야당들도 계속되는 시위로 많은 시민들이 사망하자 이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난 전총장이 양측에 권력공유를 위한 카드를 제시하였고 양측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협상은 시작되었지만 그 결과를 장담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키바키 정부 측은 신설되는 수상에 오딩가를 임명하는 것에 대해 마음 내켜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ODM 의원들의 내각 참여에 대해서도 ODM과 많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당장 헌법을 개정해야만 수상직 신설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헌법 개정에 대한 의회에서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케냐 정국이 불안한 가운데 아프리카에서 다른 국가들도 케냐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가운데 케냐와 인근에 있는 중부아프리카 차드에서 반군들의 정부군에 대한 공격으로 내전이 발생하여 또 다시 아프리카에 정치적 불안요소를 던져주고 있다.

피난 행렬

차드에서 유혈 내전사태가 벌어지자 피난 행렬이 로고네차리강(江)을 건너려고 엥구엘라 다리로 몰려들었다. 경찰들이 경찰들이 줄을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고있으나 사람과 물건이 뒤엉켜 속수무책이다.ⓒ 월간 말



차드:장기집권과 인근 국가와의 분쟁으로 인한 내전

케냐가 부정선거와 종족 분쟁으로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 1일 수단 국경지대에서 이동한 차드 반군들이 수도 은자메나로 진격해 하루만인 2일 수도 대부분을 장악하고 대통령 궁에서 저항하던 정부군과 정권을 놓고 공방전을 이어갔다. 이에 따라 미국과 프랑스 등 각국은 자국민들의 대피에 나섰고 우리나라도 프랑스 정부의 도움을 받아 30여명의 교포들을 인근 국가들로 대피시켰다. 차드의 내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이미 지난 2006년에도 반군이 수도로 진격하다 정부군에 의해 격퇴당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차드의 정정이 불안한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생활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 프랑스와 수단 그리고 리비아 등의 간섭,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쿠데타, 그리고 최근 남부지역에서 생산되는 석유 이권 문제 등이 겹쳐 있는 등 아프리카 분쟁의 전형을 보여준다.

차드는 1960년 8월 11일,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수도는 은자메나이며, 차드 호 분지의 북동부에서 남동부에 걸쳐 있다. 북쪽은 리비아, 동쪽은 수단, 남쪽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과 카메룬, 서쪽은 나이지리아와 니제르에 접하고 있다. 면적은 1백28만4,000㎢로 남한의 약 12배이며, 인구는 9백88만3,000명(2007 추계)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1인당 소득은 세계의 최하위를 기록하는 빈국으로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다른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약 200개 이상의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게 나누면 북부·중부의 이슬람교 중심의 종족과 남부의 비이슬람교 중심의 종족으로 나눌 수 있다. 언어는 공용어로 프랑스어와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현지어로 남부의 사라어 등 120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51%, 크리스트교가 35%, 애니미즘이 7%, 기타가 7%이다.

차드는 1960년 8월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민족해방이라는 공동목표 아래 뭉쳤던 여러 부족 지도자들이 패권쟁탈을 위하여 갈라졌고, 이는 내전과 쿠데타로 이어져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1980년대 말까지 하부레(Habre)가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그의 세력기반을 다졌으나, 1990년 12월 쿠데타가 발생하여, 데비(I.Deby)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1993년 잠정의회인 ‘고등잠정평의회’를 발족시켜 1994년 민정이관을 결정하였다. 이후 데비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장기집권을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내전발발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차드 반군을 이끄는 지도자 중에는 마하마트 누리 전 국방장관 등 데비 대통령 휘하에서 일했던 고위 관료들이 많다. 이들은 데비 대통령의 장기 독재와 부정부패에 불만을 품고 반군에 합류했다.

이번에 수도까지 진격한 반군의 규모는 대략 2,000여명으로 기관총과 자동소총, 로켓포로 중무장했다. 이들은 수도 은자메나에 진입할 때까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으며, 일부 시민들은 반군의 등장을 환영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차드의 내전은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내전의 상황들이 전개되었지만 이번 내전의 원인은 이웃한 수단과의 불편한 관계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수단은 지난 6년간 정부군과 남부 반군들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며 특히 서부의 다르푸르에서는 아랍계 정부군과 정부가 지원하는 민병대 ‘잔자위드’가 아프리카계 흑인들에 대한 공격으로 2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4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21세기 최악의 인권유린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사태로 인해 유엔은 이 지역에 유엔평화유지군을 파병하고 있지만 완전한 통제를 하지 못해 현재에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다르푸르 사태로 인해 수단 난민이 차드로 흘러들면서 수단과 차드가 대치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수단정부는 차드가 국경과 인접한 지역에서 수단반군들을 지원 한다고 주장하며 반면 차드 정부는 수단이 차드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반군은 수단과의 국경 지대인 아드레를 장악하고 있는데, 아드레는 수단 다르푸르 사태로 인해 발생한 수단인 난민들이 42만 명이나 머물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반군의 아드레 공격에는 수단정부군도 참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차드 정부군과 수단 정부군 간의 국제전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엿보이는 대목이다. 차드 외무부 장관도 반군 조직은 차드 정부를 붕괴시키고 사실상 차드를 장악하고 싶어 하는 수단 정부의 지원을 받아 움직이고 있어 사실상 수단 정부의 용병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차드 정부는 이처럼 수단이 차드의 데비 대통령 정권을 붕괴시키려고 하는 이유는 차드에 거주하는 수단 난민들을 보호하고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에 개입하기 위해 EU 평화유지군이 파병되는 것을 사전 차당하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EU는 난민 보호를 위해 차드에 3천700명 규모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키로 결정하고 1월 31일 선발대를 출발시킬 계획이었으나 차드 내 반군 활동이 강화됨에 따라 이를 연기한 상태다.

현재 차드 반군들이 정부군과의 교전에서 더 이상 상황을 우세하게 이끌지 못하고 수도에서 철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프랑스의 적극적인 개입이 정부군에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전투기를 동원하여 반군들에게 공세를 가했고 이로 인해 반군들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프랑스는 은자메나에 군용기와 병력 1천450명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병력 150명을 추가 파병했다. 또한 리비아와 부르카니파소 등의 중재제안을 반군들이 수용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정부군과 반군과의 전투는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현재 차드의 내전이 종결되어가면서 새로운 문제로 등장한 것이 수단과 차드와의 적대적인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두 국가는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상호간 반군들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전이 발발한지 5일이 지난 2월 6일 차드 데비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에르베 모렝 프랑스 국방장관을 접견한 뒤 군복 차림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반군의 배후로 오마르 하산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지목하면서 강력 비난했다.

이처럼 서로간의 반목이 심한 가운데 2003년의 다르푸르 사태 이후 난민 유입이 증가하면서 양국 간의 긴장도 높아졌다. 내전 중인 수단 다르푸르 지역 주민들이 이웃국가인 차드로 대거 피신한 가운데 차드 정부가 지난 12일 이들 난민들을 수용할 수 없다며 국제사회가 이들을 수단으로 돌아가도록 조치하지 않을 경우 직접 추방하겠다고 경고했다. 파리 소재 국제연구센터의 차드·수단 전문가 롤랑 마샬은 차드 정부가 유럽연합(EU) 평화유지군 파병을 촉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와 같은 경고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차드는 EU 평화유지군이 조속히 배치돼 수단과의 국경을 봉쇄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차드의 내전은 데비 대통령의 통제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국제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반군들의 활동과 차드의 만성적인 가난으로 인해 데비 대통령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롤랑 마샬은 “데비 대통령은 반군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매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군사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지원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은 난민 문제를 쟁점화하는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차드에서 정국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우선 인근 국가인 수단의 내전 종결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정국안정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현재처럼 수단에서 내전이 종식되지 않는다면 결국 수단과 차드 정부 간 상호 비방전이 가열되면서 긴장도 고조돼 국제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분쟁 해결 방안은?

아프리카에서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프리카연합과 같은 역내기구들의 역할이 중시되어야 한다. 최근 아프리카연합은 역내분쟁 불간섭을 내걸었던 이전의 아프리카단결기구(OAU)가 지녔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역내 분쟁에 적극적인 조정역할을 하고 있다. 수단 다르푸르 사태에 이미 아프리카 연합 평화유지군이 유엔 평화유지군을 대신하여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소말리아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밖에 콩고민주공화국에서도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아프리카 분쟁 조정을 위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번 차드 분쟁에도 아프리카 연합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청되고 있다.

다음으로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민주주의 정착과 경제성장을 통한 가난 감소, 교육확대를 통한 국민들의 의식향상 그리고 인종 및 종족갈등 해결을 위한 중앙정부의 적절한 법제도 마련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아프리카 분쟁에서 가장 빈번한 갈등 요소 중의 하나인 인종 및 종족 그리고 종교 갈등의 해소는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남아공은 이와 같은 갈등을 적절한 법제도와 정치력으로 극복한 대표적인 국가이다. 남아공은 과거 수백 년 동안 소수의 백인들이 다수의 유색인들을 인종차별 법으로 탄압하였지만 1994년 흑인이 정권을 잡은 이후 인종 및 종족간의 갈등을 법제도와 만델라와 같은 정치인들이 앞장서 화합으로 이루어냈다. 만델라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화해와 진실 위원회’(TRC)를 설치하여 과거의 인종간의 갈등을 치유하였고 또한 ‘무지개 국가’를 남아공의 모토로 내세워 인종 및 종족간의 화합을 이끌어 내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을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적용한다면 최근 점증하고 있는 케냐나 차드와 같은 정치 분쟁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